울릉도 독도박물관 무료관람, 울릉도 여행시 꼭 가봐야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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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국내여행

울릉도 독도박물관 무료관람, 울릉도 여행시 꼭 가봐야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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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여행 첫날..

내리는 비로 인하여 여행사 모든 일정은 취소되고

비바람으로 바닷가 구경은 실패한 우리들이 찾은 독도박물관...

 

 

도동 약수공원 산비탈 정상위에 자리잡은 독도박물관은

약수공원 초입에 엘리베이터가 있어

돌아가지 않고 손쉽게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울릉도 3대 사찰 해도사 전경이 내려다 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나무다리를 건넜다.

 

 

다시 밖으로 나와 독도박물관 본관을찾았다.

 

 

독도박물관 관람은 무료였고

관람 시간은 오전 9시 부터 오후 6시까지 였지만

오후 5시 30분까지 입장하면 관람은 가능했다.

 

 

제일 먼저 1층에 위치한 제 1전시실에 들어갔다.

 

 

1전시관 첫번째 구간은 독도에 서다라는 타이틀에서 보듯

독도를 그대로 옮겨놓은 공간에서

독도를 바라보는 기분을 느끼며 독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2번째 구간 독도 실감으로 걷다.

독도 선착장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독도의 풍경을

 영상으로 감상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실감나는 360도 VR동영상으로 독도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 2 전시실 독도의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2 전시관 첫번째 구간 역사속 독도는

울릉도와 독도의 주요 사건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펼쳐져 있는 독도의 역사

 

 

독도, 한국의 영토로 편입되다.

1,500년 전부터 울릉도와 독도에는

우산국이라 불리던 강력한 해상왕국이 존재했었는데

우산국은 한반도 동남쪽 해변을 대상으로 약탈을 일삼았다고 한다.

신라는 자국민 보호를 위하여 우산국을 복속시켜

신라의 영토로 편입시켰다고 한다.

이후 고려시대까지 독자적인 국가로 존재했었지만

잦은 외세의 침략으로 우산국의 지배세력이 점차 약해져

고려의 부속 도서인 울릉도와 우산국으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해상왕국 우산국

512년 신라의 영토로 편입된 해상왕국 우산국이

고려시대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흥망성쇠를 살펴볼 수 있다.

 

 

울릉도쟁계와 수도정책이 남긴 기록

일본은 수시로 울릉도와 독도를 드나들며 수탈을 자행했고

그 결과 이 두 섬의 영유권을 둘러싼 외교적 분쟁인

울릉도쟁계가 발생하여 일본 정부는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함과 동시에

이 두 섬에 자국민의 출입을 금지하였다고 한다.

 

 

숙종실록 권 30 , 31

안용복이 비변사에서 심문당한 당시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안용복이 일본으로 끌려가 에도막부로 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서계를 받아냈다는 내용뿐 아니라

울릉도 쟁계에 대한 사항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대풍헌 소장문서는 수토사 일행이 머무르던

울진 대풍헌에 소장된 문서로

수토시 발생하는 경비의 조달방법을 규정하고 있는데

수토사 일행의 규모와 수토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자료이다.

 

 

조선의 땅 독도 구간에는

독도를 공식적으로 조선의 영토로 편입하였다는 자료와

일본도 독도는 조선의 영토로 기독되었다는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조선국지리도는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1592년 제작되었는데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식 명칭으로 표기한 최초의 일본지도라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는 조선초기의 대표적 지리지로

울릉도와 독도의 지리정보들 담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지리적인 위치와

 맑은 날 육안으로 섬이 보인다는 기록은

조선시대 독도영유권을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빼앗긴 독도와 일본의 모순

19세기말 조선은 수토정책의 실효성이 미비하다고 판단하여

조선인들이 정착하여 살 수 있도록 울릉도 재개척을 시행하였다.

하지만 제국주의적 야욕에 휩쌓인 일본은

조선의 정책을 무시한 채 독도를 주인이 없는 섬으로 왜곡한 후

불법적으로 일본의 영토로 편입시킨다

이처럼 독도는 가장 먼저 일본에 침탈당한 한반도의 영토가 되었다.

 

 

수토정책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이 울릉도에 수시로 드나들자

조선 정부는 울릉도에 다시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재개척을 시행하였고

울릉도와 독도를 강원도의 27번째 지방관제로 포함시켜

칙령 제 41호를 통해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만방에 알렸다.

 

 

울릉도 검찰일기는 울릉도 검찰사를 역임한 이규원의 일기로

당시 울릉도에 거주하고 있던 조선인의 현황과

일본의 불법침입 사실 등을 기록하고 있다.

 

 

칙령 제41호대한제국이 단행한 관제개정으로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도감을 군수로 격상하였다.

또한 독도를 울도군의 관할구역으로 선포,

 독도의 영유권이 대한제국에 있음을 알렸다

 

 

일본 시마네현 지방정부는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작성한 후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불법편입 하였다.

하지만 이 문서는 조선의 영토인 독도를 주인없는 섬으로 주장한 점,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내부에서만 돌려본 점,

영토편입의 절차를 무시하는 등 실효성이 없는 불법적인 문서였다

 

 

일본각의 결정문

일본내각은 대한제국의 영토인 독도를 일방적으로 무인도로 규정,

다케시마로 명명하고 자국영토로 편입함을 결정하였으며

이 결정문을 근거로 독도가 자리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다고 한다.

 

 

독도를 부르는 다양한 이름

독도라는 이름은 울릉도 주민들이 부르던 '독섬'의 뜻을 취하여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독섬'은 돌섬의 사투리라고 한다.

그 이전에는 다양한 이름으로 독도가 문서와 지도상에 나타나 있었다.

현재 전세계 지도상에 독도라 표기되는 곳은 많지 않은걸로 알고 있다.

지금도 노력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노력으로

 독도라는 우리의 이름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독도를 지키기 위한 노력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일본이 불법적으로 침탈한 독도를 남한의 영토로 반환하기로 결정하여

독도는 다시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독도에 대한 주권이 완벽히 회복된것은 아니라

미국이 독도를 미국 공군의 폭격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폭격으로 인해 독도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수많은 울릉도 주민이  희생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독도에 대한 야욕을 버리지 못한 일본의 끝질긴 로비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의 소유권에 대한 부분이

 삭제되는 일이 발생되었다고 한다.

이에 1952년 한국 초대 정부와 이승만 대통령은 해양주권보호와

 독도영유권 강화를 위해 평화선을 선포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전시관에 포탄탄두가 있어 의아했었는데

이 탄두가 바로 해방 후 미국이 독도를 폭격 훈력구역으로

사용할 당시 투하한 포탄의 탄두였다.

 

 

제2 전시실에 전시된 다양한 자료들을 보면서

이렇게 독도가 우리땅임을 알리는 자료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독도가 자기땅이라 우기는 일본의 비열한 야욕에  화가 치밀었고

해방 이후 독도를 지키기 위한 정부와 민간의 노력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아 속상했다.

 

 

제 3 전시관은 2층에 있었다.

 

 

독도에서 살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아침을 맞이하는 독도.

척박한 환경에서도 억척스럽게 삶을 개척한

우리의 선조가 살아왔던 섬, 독도.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섬, 독도.

여기 독도에서의 삶을 만나다.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바로 실효적 지배, 독도에 한국인이 살고 있다는 점이다.

 

 

옛날부터 독도는 울릉도 주민의 삶의 터전이였다.

1965년 최종덕 씨가 독도 공동어장 채취권을 획득하고

서도에 거처를 마련해 본격적인 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1981년 독도로 주민등록을 옮기면서 최초의 독도 주민이 되었으며

최종덕씨가 사망하자 그의 동료였던 김성도 씨가

1991년 주민등록을 옮겨 공식적인 독도 주민이 되었으며

지금도 독도에서 삶의 터전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경찰은 1954년 7월 독도 경비대를 창설하고

독도에 머무르면서 본격적인 독도 경비업무를 시작하였다.

독도경비대의 노고와 희생을 바탕으로

독도는 평화로운 한국의 영토로 지켜지고 있다.

 

 

국민들의 관심으로

많은 이들의 손에서 다양한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 독도

 

 

대한민국 정부 및 기업은 국민에게 독도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고

독도를 지켜나가기 위해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하였다.

이처럼 독도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제 3 전시실에는 독도를 사랑한 사람들에 관한

전시가 이루어진 공간으로

독도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4전시관에 들어서자 독도 실시간 영상이 작동되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섬 독도의 형성과정이

영상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또한 독도정보 검색공간으로

독도의 해양생물, 독도의 식물, 독도 가제,

독도의 곤충, 독도의 조류에 대한 정보와...

 

 

 

국가지질 공원으로 지정된 울릉도와 독도의 지질명소

독도의 지형, 독도의 자원에 대해 살표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위 사진 오른쪽에 있는 영상실에 들렸는데

사진으로 담지는 못하였다.

그 안에서는 독도영유권, 독도의 자연,

 일본의 불법적 영유권 주장의 문제점 등

독도와 관련한 다양한 영상이 실시간으로 상영되고 있었다.

 

 

독도박물관은 국내 유일의 영토박물관으로서

 독도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심어주고

독도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여

국민들에게 독도란 어떠한 섬인지 널리 알리고 소통하며

함께 독도를 지키고 가꾸어 나가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 자료 : 독도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어릴적 부터 막연하게 독도는 우리땅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정확사실 증거에 입각한 자료들을 보니

일본의 어거지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독도가 역사적으로 당연히 한국 영토이나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굽히지 않는한

안심할 수 는 없다고 한다.

 

더 많은 분들이 알아주었으면 해서

내가 보고 느낀 것 보다

전시된 자료에 적혀져 있는 내용들을 옮겨 놓은게 더 많다.

 

우리조상들이 지켜왔고 지금도 독도수비대가 지키고 있는

우리의 땅을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 독도박물관 위치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약수터길 90-17번지

 

 

★ 전화번호 : 054-790-6432~6

★ 독도박물관 개장시간 : 오전 9시~오후 6시

★ 휴관일 : 연중 무휴

 

사진 - 아이리스

2019. 05. 27 - 울릉도 독도박물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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