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안보 가볼만한곳] 월악산 미륵리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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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국내여행

[수안보 가볼만한곳] 월악산 미륵리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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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리 석불입상 - 보물 96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에는 높이 9.8m의 거대한 미륵입상이 있는데

건립에 대한 문헌상의 기록이 없어
언제 건립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삼국유사에 미륵대원등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저자인 일연 스님이 살았던 시대 이전에 만든 것은 확실하니,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륵리 팔각석등 - 사지내의 미륵석불과 오층석탑 사이에
높이 2.5m의 고려시대 것으로 보이는 균형이 잘 잡힌 우수한 석등이다.

 

미륵리 5층석탑과 사각석등

미륵리 오층 석탑 - 보물 95
삼국시대에 있어서 고구려와 신라의 격전장으로 추측되는 하늘재 아래
남북형 분지에 우리나라에서는 극히 드물게 보이는 석굴사원 양식인

미륵사지가 펼쳐지는데 이 석굴사원의 경내에는

석불입상과 그 앞으로 역시 같은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여 지는
8각석등과 미륵리 5층석탑으로 알려진 석탑이 1기가 우뚝 서 있다.

미륵리 5층석탑은 높이 6m의 화강암 석재를 사용하여 축조했으며

자연석을 다듬어 그대로 지대석으로 사용하였고
지대석과 기단부가 커다란 자연석1매로 조성했으며

 기단부의 내부를 일부러 파 내어 4면의 벽석을 만든 형태로 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세련미가 부족한 듯 보여지고 있으나

 상륜부에는 큼직한 노반이 있고
정상에는 철제로 만든 철주가 남아 있어

또 다른 계의 신라말 고려 초의 석탑 구조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미륵리 사각석등 - 미륵사지 내에 있는 또 다른 고려시대의 석등이다.
흙 속에 묻혀 있던 것을 1977년도 미륵리 사지 발굴 작업 때 찾아내어
5층석탑 북쪽에 다시 세운 것인데 원위치는 아니다.
이 석등은 8각의 기본형을 벗어나 4각으로 약식화 되어있다

 

미륵리 사각석등, 미륵리5층석탑, 미륵리8각석등, 미륵리 석불입상이 나란히..

 

충주 미륵리 사지 귀부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69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사지에 있는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이다.
현재 사각 석등 옆에 자리하고 있다.
옮기기 힘든 대형 크기로 보아

원래 이곳에 있던 자연 암반을 이용해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온달장군 공기돌 바위

 

월악산 국립공원 미륵리 미륵사지 내에 있으나

 미륵사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자연적인 바위에 약간의 인공이 가미된 바위로

생긴 모양이 거북이와 비슷하다하여 

거북바위라 불리우는 바위 위에  올려져 있는

직경 1m 가량의 둥근돌(공기돌) 바위로
온달장군의 전설로 인해 공기돌 바위로 알려진 바위이다.


동쪽의 하늘재는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지역이었으며

고구려 평원왕 때 온달장군은 스스로 군사를 청하여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 상류 지역인 이곳과

죽령부근의 단양 땅을 회복하려고 하였다.


이 지역에 주둔하며 성을 쌓을 때 휴식시간에

이 바위를 공기돌로 사용하여 놀았다 하여 온달장군의 공기돌 바위라 한다.


온달장군은 단양 영춘면 아단성에서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고 한다.
미륵사지 입구에 있는 밭 가운데에

삼한시대 토축한 길이 6.2m 5.4m의 무덤이 있는데
동네 사람들은 이를 온달장군의 묘로 부르고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고 한다

미륵리사지

종목 : 사적 제317
지정일 : 1987.07.18
소재지 :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 58
시대 : 통일신라
소유자 : 충주시

월악산국립공원 내 하늘재 아래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사찰지로

현재 파손된 사원 안에 석불입상이 서 있고,

그 앞으로 역시 같은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여 지는 8각 석등이 있고
석등의 전면에는 미륵리 5층석탑으로 알려진 석탑이 1기가 존재하는

단탑가람(사원)배치의 형식을 갖춘 사지이다.


일찍부터 석굴사원이냐 아니냐는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발굴과정을 통해 많은 유구와 유적이 발견되어
이 미륵당이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석굴사원일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석굴사원은 인도나 중국과 같이 더운 기온을 피하기 위하여

석굴에 사원을 만들지만
우리나라에는 석굴사원과 같은 양식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한다.

다만 경주의 토함산 석굴암만이 유일무이 하다고 했는데

미륵당 역시 석굴사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경주 석굴암 복원 과정에서 참고로 이 미륵리 주실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석굴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사지에서 출토된 유물들로 보아서는

고려 초기에 창건되었으며 고려후기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지의 이름은 미륵대원(彌勒大院)으로 고증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 태자와 누이 덕주공주 남매가

왕권회복을 도모코자 강원도 한계산성으로 가는 도중

미륵사와 더불어 세웠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사진 - 아이리스

2010. 3. 16 - 충주 미륵리사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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