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이동으로 이사온지 어느새 13년
봄맞이 대청소는 아니고
조만간 옆동네로 이사 갈 예정이라
버릴 물건들을 정리하기 위해
창고같이 사용하는 베란다를 정리하다
앵글위 구석에 먼지 쌓인 채 방치되어있는
야외 촬영 앨범을 발견하게 되었다
습기찬 베란다에 방치해 놓다 보니
앨범 속 사진들은 빛이 바래 있었고
겉표지는 삭아서 건드리기만 해도
가루가 우수수 떨어져 그냥 둘 수가 없는 상태라
할 수 없이 앨범 속 사진만 빼내기로 했다
사진을 빼내다 보니 앨범 속 모습을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뒤늦게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야외 촬영 장소는 올림픽공원이다
친정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선택했는데
이때부터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었나 보다
천년을 기다려 그녀를 만났습니다
로맨스 소설의 한 구절 같은 문구가 참 좋았는데
지금 보니 참 촌시럽다
잊고 있었는데 이날 트럼펫도 불었었구나~
공부보다 콩나물 대가리 그리는게
더 좋았다는 신랑은 트럼펫을 전공했다
군대 가서도 문선대에서 트럼펫을 불었는데
내가 음악 하는 사람은 싫다고 했기에
결국 그 좋아하는 음악을 포기하고
내게로 와 내 사람이 되었고
이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를 위한 연주를 해주었다
트럼펫을 불었던 장소는
때죽나무가 있는 몽촌토성 아래 잔디밭으로
많은 사람들이 연주를 감상했던 기억이 난다
결혼 전에는 사진이 실물보다 잘 나와
사진 찍히는 걸 좋아했었다
그런데 결혼 후 아이 키우고 삶에 찌들면서
사진 속 내 모습이 이쁘지 않아
사진 찍히는걸 멀리하게 되었다
야외 촬영 할 때만 해도
카메라 앞에 서는게 엄청 어색했지만
이날 만큼은 그 순간을 즐겼던 것 같다
여기는 나홀로나무 옆
억새가 있는 산책로 잔디밭이다
이때만 해도 나홀로나무 잔디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그림의 떡이었기에
그 주변에서 사진촬영을 했다
사진 일부분만 양면 테이브로 붙여놓아
다행히 사진들을 상하지 않게 떼어낼 수 있었다
엄청 무겁고 커다란 이삿짐 하나가 줄어들었다
---◇---
지금도 많이들 찍겠지만
내가 결혼할 당시만해도 집들이 때 외에는
거의 앨범을 열어볼일이 없는데도
야외 촬영은 필수였다
책꽂이에 고이 모셔두었던 앨범은
첫아이 백일 앨범 등장 이후부터
베란다 선반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그렇게 찬밥신세로 전락한 앨범은
결국 마지막 버려지는 순간에야
다시 내 손을 거치게 되었다
젊음 하나만으로도 이쁜 나이라는걸
저때는 몰랐었다
오동통한데다 화장법과 분장 때문에
지금보다 더 성숙한 모습의
내가 아닌 나를 보는것 같지만
풋풋했던 20대의 나를 이렇게나마 기억해본다
사진 - 아이리스
2022. 02. 25 - 야외 촬영 앨범을 정리하며
Comments+